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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로쿠의 식물입덕일기 1편 : [제가 왜 식물을 좋아하게 됐냐면요:삼재]

by chorok._.u 2024. 8. 20.

나는 원래 식물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다.

왜 엄마랑 이모들은 봄이면 진달래, 개나리 보러 산에 가고, 가을이면 단풍구경에 겨울이면 눈꽃구경.
카카오톡 프로필은 항상 알록달록한 꽃에 감성글귀로 뒤덮이는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엄마보다 더 지독해졌다.
주말이면 식물마켓 오픈런하고, 퇴근 후에는 ‘식물 잘 키우는 법’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나도 잘 안 챙겨먹는 영양제를 식물에 좋다고 하면 다 사모으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절마다 이번에 유행할 패션 아이템은 뭐며, 어떤걸 장만할지 고민했던 나는 없어지고, 이번 계절에 새로 나올 아이들(식물)을 기대하며 어떤 식물을 데려올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정도면 식물변태 지망생쯤 됐다고 할 수 있다.

때는 2022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 즈음이었다.
뭘 해도 안되는 친구가 있었다.
삼재라 그런가, 원하는 건 다 실패하고, 사고나서 다치고, 차 수리한다고 돈 깨지고.
세상이 마치 그 친구를 장풍으로 밀어내는 것만 같은 시기였다.

안타까웠다. 친구로서 해줄수 있는건 응원과 그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주는 것이었다.
행운의 네잎클로버처럼 그 친구에게 좋은 운이 깃들수 있는 선물을 주고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운이 좋아지는 법’에 관한 한 포스트를 보게되었는데, 온갖 비과학적인 방법들이 많았다.
귀를 뚫어라, 주사를 맞아라, 깨끗하게 목욕해라 등등..
그 중에 식물을 가까이 해라 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살아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식물을 집 안에 들이면 기운이 좋아진다는 맥락이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이 글이, 그 친구도 아닌 나를 식물 세계로 이끌어버렸다.

내 첫 식물은 다이소였다.
다이소표 바질, 방울토마토, 봉선화, 해바라기.
화분과 씨앗으로 구성된 세트를 구입해 어떻게 하면 씨앗이 잘 발아할지 친구들과 열심히 토론했다.
‘광발아를 해야한다’ ‘암발아를 해야한다’ ‘흙에 심는게 좋다’ ‘패트리 디쉬에서 발아시키고 심는게 좋다’ 등등.. (필자는 공학계열 대학원생이다. 사실 산소 플라즈마처리 컨트롤 실험도 해봤다.)
어떻게 심든 건강하고 신선한 씨앗은 잘 발아할텐데 그땐 모든것이 처음이라 다 조심스러웠다.
씨앗을 심는 것을 시작으로, 자그마한 싹이 움트는 모습에 두근거리고, 매일 조금씩 키가 자라는 모습에 대견하고, 어느덧 쑥쑥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음에 감동하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새로운 자극이었다.

어쩌면 그 때의 나도 친구 못지않게 응원이 필요했나보다.

하루하루 무언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는 안 나오고,
지금 내가 하는것이 처음에 내가 원하던 것이 맞는건가, 내가 꿈꾸던 목표에 닿을 수 있긴 한건가.
하루하루 한계를 느끼고 순간순간에 좌절하며, 처음 꿈에 가득차 있던 ‘나’는 없어지고 주변 동료들과의 비교에 한없이 작아져만 있는 ‘나’만 남아있었다.

이렇게 혼란과 혼돈 속 불안감으로 가득차있던 때에
적당한 물과 조금의 관심만 줘도 잘 자라주는 식물들을 보며 나는 용기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나‘라는 식물도 언젠가는 이 식물들처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겠구나. 속도가 느릴뿐 조금씩 성장하고 있구나. 라는.

단순히 엄마로부터 유전된 식물덕후 DNA가 이제서야 발현된 걸 수도 있지만?

식물을 내가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글로 남기며 이 마음을 잊지않고 내가 데려온 식물들을 책임감있게 키우려고 한다.

이 글을 우연히 읽고 있는 행인2에게, 당신은 왜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나요?
함께 그 마음을 공유해요 우리.


다이소표 바질, 방울토마토, 해바라기, 봉선화 친구들